어린 시절 동화는 잔혹했다.
머나먼 왕국의 아름다운 성에서 계모의 계략을 주변의 온갖 도움으로 극복하고 멋진 왕자님을 만나 오래오래 잘 살았더라는 현실과는 괴리된 환상의 세계였다. 마치 인생의 고난들은 적재적소에 나타난 귀인들이 가뿐히 해결해 줄 것이고 주인공인 나는 그저 미모나 유지하면서 백마 탄 왕자님이 데려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 같은 기분이랄까?
작가는 주인공을 민폐 캐릭터로 만들며 미필적 고의를 저지르는 착한 요정이나 영리한 동물보다 속내가 훤히 보이는 트위들디,트위들덤 쌍둥이 같은 투덜이들과 친근함을 위장해 독이든 사과를 건네는 마녀 같은 이들까지 동화 속 빛나는 주인공들 옆에 더 깊은 어둠으로 자리 잡은 인물들을 주목한다.
이들이야 말로 어둠이 걷힌 후 더 눈부시게 다가오는 태양처럼 삶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주는 장치가 아닐지.
동심을 바탕으로 지어진 동화는 팍팍한 현실을 가리고 달달한 희망을 이야기함으로써 미숙한 인간들이 미처 경험하지 못한 삶의 역경을 단순하게 보여주고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 하지만 어쩌면 삶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캔버스 위 주인공들의 무표정은 활짝 웃고 있지만 이면의 슬픔을 가지고 있는 삐에로의 웃음보다 은유적이며 사유적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 그림동화 속 캐릭터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와 마주쳐 관계하고 지나치며 살아온 것이며 이러한 마주침 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동화적 상상과 현실의 깊이를 잘 완충하여 유머를 잃지 않고 좌절과 절망 보다는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다~'로 귀결되길 기대한다.